*2008년 봄부터 겨울까지 작업실 주변에서 염소 한 마리(수컷)를 키운 적이 있습니다. 그 때 쓰던 글입니다.

 

[염소 이야기1] 나는 가족들과 인간들이 만들어 놓은 사육장에서 살아가고 있는 염소다. 바깥세상을 본 적도 없고 바깥세상에 관심도 없다. 어렴풋이 바깥세상을 짐작해 볼 때, 사육장 밖에는 먹을거리가 산재한 초원들이 펼쳐져 있을 것이라고 믿고 있다.

염소
아침부터 기분이 이상했다. 점심을 먹고 있는데 사료를 주러 왔던 주인장이 내 눈과 마주쳤다. 주인장은 나를 바라보면서 고개를 끄덕이더니 다시 돌아갔다.

 

춘곤증이 몰려올 시간에 멀리서 인간들이 타고 다닌다는 자동차 소리가 들려왔다. 점차 엔진소리가 가까워지더니 사육장 앞에서 엔진소리가 멎었다. 지난 주에 큰 누나와 외할머니를 싣고 간 보신탕집 주인의 자동차 소리와 비슷했다.

 

나는 몸이 어려 싣고 가도 인간들에게는 아직 별 도움이 되지 않는다. 나를 데리러 오지는 않았을 것이라 생각하고 되새김질이 올라오는 것을 소화하고 있었다.


사육장 안으로 중년신사와 그보다 조금 젊어 보이는 남자 한 명이 들어왔다. 처음 보는 사람들이었지만 별다른 경계를 할 필요는 없었다. 인간들은 우리를 몸보신용으로만 알고 있어 거기에 충실하게 응해줄 뿐이었다.

 

남자 두 명은 내 앞으로 다가 왔다.
인간들끼리 알 수 없는 이야기를 주고받았다. 지난 번 큰 누나와 외할머니를 데려가 사람과는 눈빛이 조금 달랐다. 저 사람들이 여기를 왜 왔을까?


갑자기 우리 안으로 덩치 큰 중년이 뛰어 들어왔다. 순식간에 벌어진 일이라서 우리 가족들은 한쪽 구석으로 몸을 피했다.

중년신사는 구석에 쭈그리고 있는 내 앞으로 다가 왔다. 나를 잡아갈 모양이었다. 낮선 사람들이 사육장 안으로 들어왔을 때만해도 내가 어디론가 잡혀갈 것이라고는 전혀 생각을 하지 못했다. 아주 어릴 적에 동생이 이웃집에 팔려간 적은 있었지만, 나는 운이 좋아 내가 태어난 이곳 향한리(충남 계룡시)에서 말년까지 살아가는 줄만 알고 있었다.

 

인간의 손에 잡히지 않으려고 발버둥 쳤지만, 소용이 없었다. 중년신사는 염소를 많이 잡아 본 듯 능숙한 솜씨로 내 몸을 다뤘다. 중년신사는 내 뒷다리를 잡고 나의 ‘거시기’를 바라보더니, 뒷다리를 잡은 채, 함께 온 젊은 남자에게 나를 인계했다. 젊은 남자는 나를 우리 밖으로 꺼내어 자신의 짚차 짐칸에 밀어 넣었다.

 

우리 안에서 뒷다리를 잡혀 짚차 짐칸에 옮겨지는 데에는 불과 1분도 걸리지 않았다. 나는 비명만 질렀다. 도무지 알 수 없는 일이 내게 벌어진 것이었다. /숲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