첫 번째 개인전 서문(1995)[지난 자료] 개인전 서문(1995.11. 관훈미술관, 서울)

 

窓 연작에 나타난 자연의 생명력

-이재수의 근작에 대하여-

글/미술평론가 윤진섭(호남대 교수)

 

외부에 존재하는 사물이나 현실을 사실적인 필치로 화폭에 옮기는 구상회화와는 달리 추상회화는 작가의 내면에서 용솟음치는 정념을 회화적 형식을 빌어 표현한다. 이를 테면 전후에 유럽화단을 휩쓸었던 비정형회화(앵포르멜)는 전쟁이 남긴 상처와 황폐된 인간정신, 그리고 실존의 문제를 회화형식으로 표현한 것과 같은 경우가 그것이다. 그러나 아무리 외부세계의 현실이나 자연을 재현하지 않은 것처럼 보이는 추상회화라고 하더라도 자연으로부터 완전히 자유로울 수는 없다. 이 말은 몬드리안의 구성적 기하학적 추상회화가 애초에 자연으로부터 출발했듯이, 완전히 외부현실과 절연된 것처럼 보이는 유기적 추상회화들이  실은 육안을 볼 수 없는 미시적 세계를 담고 있다는 사실과 부합된다. 실제로 많은 추상회화작품들이 자연 일부나 현상으로부터 모티브와 소재를 빌어 있음은 이를 증명해 준다.


이재수의 거칠고 격렬해 보이는 추상작품들은 역시 자연으로부터 모티브를 빌려 오고 있다. 캔버스에 유화로 그려진 이재수의 ‘窓’연작들은 세월의 무게를 견뎌온 고목의 풍화된 모습으로부터 착상된 것이다. 전체적으로 한색과 난색의 대비를 보이며 필(筆)의 대립적 또는 이원적 중층구조를 드러내고 있다.


이재수의 ‘窓’ 연작에서 우리의 관심을 끄는 부분은 작가의 화면운영 능력이다. 특히 그 가운데서도 색채에 대한 감각과 과감한 운필은 회화에 대한 작가의 재능을 엿볼 수 있게하는 대목이다. ‘窓’이라고 이름 붙인 것을 통해서도 알 수 있듯이, 창(窓)은 사물과 외부현실을 바라보는 기본개념이 되고 있다.


‘창’이라고 했을 때 상기되는 유명한 발언은 아놀드 하우저의 것인데, 그는 창을 참여와 순수의 양대 입장에 대한 중간항(中間項)으로 설정했다. 즉 우리가 창을 바라볼 때 바깥 현실에 주목하면  회화가 현실을 반영하는 틈이 되지만, ‘창’ 자체에 주목한다면 크기와 색깔 구조등을 다루게 된다는 것이다. 이재수 역시 ‘창’이라고 하는 기본구조에 주목하고 있다. 창은 그의 작품 속에서 사각형의 형태로 나타나고 있지만 그것은 하나의 요서일 뿐이지 정교한 개념적 장치로 확고하게 자리 잡고 있는 것은 아니다.


이재수의 작품에서 우선적으로 고려되어야 할 것은 역시 화면을 시원하게 요리해 나가는 감각의 운필의 측면이 될 것이다. 수묵화에서의 발묵기법처럼 기름의 양을 조절함으로써 시원하게 번져나간 안료와 그 위에 가해진 서체적 이미지, 또는 넓은 뜻으로 미끄러지듯 칠해나간 붓의 흔적에서 오는 계조(그라데이션)의 맛과 거기에 대비되는 고목의 일부 이미지 등이 조화를 이루며 형상화되고 있다.


고목에서모티브를 얻었다고는 하지만 나타난 결과로서 이재수의 회화는 그보다는 오히려 보다 넓은 지평을 보여준다. 그것들은 단순히 하나의  소재적 차원에서의  고목이라기보다는 그러한 나무들을 자라게 하는 토양으로서의 대지(大地)가 지닌 풍요함과 비옥함을 암시하고 있다. 갈색과 청색이 조화를 이루고 있는 이재수의 ‘창’ 연작들은  색채와 운필의  결합을 통하여 대지와 고목으로 대변되는 자연의 생명감과 약동을 회화언로로 번안해 내는데 성공하고 있다. 앞으로 계속 이어지게 될 작업을 통하여 보다 탄탄한 스타일을 구축해 나가길 기대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