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ogo

회원가입  로그인

손님들도 책이야기에 한하여 글을 쓸 수 있습니다. 책이야기가 아닌 다른 이야기는 자유게시판(손님방)으로...

지난자료들 중에 오래 전(언제인지 기억이 나지 않음)에 조정래 소설 '태백산맥' 관련하여 쓴 글이 있어 이곳에 올립니다./이재수.

 

우리 입맛은 왜 이리도 간사한 것일까?
식당에서 딱딱하게 얼린 삼겹살을 구워먹는 일이 최고의 외식인 줄만 알고 지냈던 때가 엊그제이다. 학교 앞 분식점 주방아줌마가 가장 음식솜씨가 뛰어난 줄만 알았던 때가 얼마 지나지 않았다. 이제는 생고기가 아닌 얼린 고기는 입에 대지도 않으려 하고, 분식점에서 먹는 비빔밥에는 고사리무침이 빠졌다고 투덜대기 일쑤이다.

 

회식자리에는 돼지고기보다 비싼 쇠고기가 상다리를 휘어 놓는다. 변두리 동네 통닭집에서 튀겨주는 통닭은 닭사료 같은 맛이고, 치킨전문점마다 맛이 다르다는 사실을 알고 있는 것이 퍽 좋은 경험을 가지고 있는 냥 착각하며 살고 있다. 시장바닥에 앉아서 아나고회 한 접시로 서너 명이 모여 앉아 들이키던 술맛은 잊고, 한복 입은 아가씨가 챙겨주는 고급횟집이나 일식집에서 먹고 마셔야 근사하게 취하는 줄 안다. 또 우리 나라는 음식값에 봉사료가 포함이 되어 있는 데도 종업원에게 팀을 주며 어깨 힘까지 주려한다.

 

한 해 한번 용돈을 아껴 애인 생일에 양식을 먹으면서 실수하던 기억들은 헤프닝이 아닌 기억조차 하고 싶지 않은 촌스러운 일이라고 생각하고 있다. 우리는 왜 이리 간사할까?

 

소설<태백산맥5>에서 아이들이 보릿고개를 넘기는 부분이 있다. 그 부분만 잘라 -아래-에 붙여놓았다.
우리 세대들이야 보릿고개란 말은 웃어른들에게 귀동냥으로 들었을 뿐이지 실제 경험은 없다. 어릴 적에 삐비를 뽑아먹거나, 다래를 몰래 따먹거나, 솔순을 분질러 먹거나, 뱀딸기를 따먹거나, , 찔레순을 꺾어 먹어 보았지만, 사실 허기를 때우려기 보다는 재미 삼아 하던 짓이었다.


그나마 그 슬픈 맛을 알고 있는 세대들은 보릿고개를 이해하겠지만, 그런 경험이 없는 세대들은 아마도 단군신화에서 곰이 마늘을 먹었다는 이야기와 같은 맥락에 놓고 고개를 도리질 치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다. 이젠 처한 시대상황을 그린 이야기들이 신화이거나 옛동화 속에서 나오는 이야기들이라고 우길 날이 머지 않았다.

 

-아래-
삼월이 오는 봄이고, 오월이 가는 봄이라면, 사월은 머무는 봄이었다. 머무는 봄의 자태는 하늘과 땅 사이에 현란함과 황홀함과 혼미함으로 드리워져 있었다. 그건 아지랑이였다. 오월 풋보리를 기다리는 사월은 죽 한 끼를 제대로 넘길 수 없도록 충궁이 극에 달하는 시기였다.


어른 아이 할 것 없이 굶주림에 비비틀려 허깨비걸음을 걸으며 어지럼증에 휘둘리고, 부황기는 눈에 까지 퍼져 희자위가 누르스름하게 물들어 있었다. 그런 사람들에게 움직임이 없는 모든 물체마저 흔들리고 어릿거리고 출렁거려 보였다. 그런데 하늘과 땅 사이를 가득 채운 아지랑이는 끝도 없이 아롱거리는 잘디잔 흔들림으로 피어오르고 있었다. 굶주림으로 무너져내리고 있는 사람들에게 그 아롱거림은 현란한 아름다움도, 황홀한 감상도, 혼미한 서정도 아니었다. 그건 어지럼증을 더해주는 어지러움일 뿐이었고, 귀울음을 더 깊게 해주는 귀울림일 뿐이었다.

 

아이들은 아지랑이를 헤치며 한사코 마을 뒷산을 기어올랐다. 물오름이 한창인 산에는 그나마 생명의 불씨를 지켜줄 최소한의 먹이가 있었던 것이다. 아이들은 앞다투어 삐비를 뽑아먹었고, 솔가지를 꺾어 송기를 빨았으며, 솔순을 분질러 입에 몰아넣었다. 그러나 그런 허기 달래기도 마음놓고 할 수 있는 일이 아니었다. 솔가지를 꺾어대는 것은 나무를 상하게 하는 일이었고, 새로 돋는 순을 분질러대는 것은 나무자라기를 해치는 일이었다. 그래서 인심 사나운 집의 산에서는 산지기와 숨바꼭질을 해야 했다. 산에는 아이들만 오르는 것이 아니었다. 남자들은 칡이나마 캐려고 괭이질을 했다.

 

송기나 솔순은 한꺼번에 많이 먹어지는 것이 아니었다. 그런 것들은 아무리 먹어도 밥이나 떡처럼 배가 부르지 않을 뿐만 아니라 어느만큼 먹으면 그 독하도록 진한 솔냄새가 비위를 상하게 할 즈음이면 아이들은 하나같이 지쳐 있었다. 그들은 누가 먼저랄 것 없이 햇발 두터가나 언덕빼기로 흐느적이는 걸음들을 옮겨 놓았다. 모여앉은 아이들의 얼굴은 마를 대로 말라붙은 채 말버짐이 피거나, 누르께하게 들뜨거나, 검게 타들고 있었다. 그 굶주린 얼굴들의 입 언저리에는 분가루를 바른 듯 노오란 솔꽃가루들이 묻어 있었다. 아지랑이 속에서 질푸른 보리밭도 아롱거리고, 자운영꽃 붉은 논도 아롱거리고, 검은 빛 먼 산도 아롱거림을 바라보며 아이들은 어서 오월이, 그리고 유월이 오기를 기다렸다.

 

오월이 오면 보리서리 밀서리가 시작되고, 유월이 오면 가자서리 꽃게잡이를 하게 되었다. 여름이 되어갈수록 배를 채울 것이 많아진다는 것을 아이들은 알고 있었다. 아이들은 삐비나 솔순만 먹는 게 아니었다. 찔레순도 껍질 벗겨 먹었고, 뱀딸기도 따먹었고, 개더덕도 캐먹었다. 먹는 것인 줄 번연히 알면서도 그러나 아이들이 손대지 않는 것이 한 가지 있었다. 유월 들어 영글기 시작하는 목화다래였다. 보리서리 밀서리 같은 것도 어른이나 주인의 눈들을 피해 하는 것이었지만, 들키게 되더라도 어른들은 새 쫓듯이 먼발치에서 소리만 질렀는데, 다래를 따먹다가 들키면 어른들은 정말 화가 나서 머리통에 주먹질을 해대게 마련이었다.

 

 주인이든 아니든 어른들이 그러기는 마찬가지였다. 어른들이 왜 그러는지를 아이들은 알았다. 보리나 밀은 사람이 먹고 사는 음식이었고, 다래는 솜으로 두고두고 써야 하는 물건이지 먹어 없애는 음식이 아니었다. 붉은 점이 돋아나기 전의 어린 다래는 달치근한 물기를 품고 있어 꽤나 먹을 만했다. 그러나 아이들은 인적이 전혀 없는 산밭을 지날 때도 초록빛 어린 다래에서 애써 눈길을 돌렸다. 모습이 보이지 않는 종달새는 아지랑이 가득한 하늘 그 어디에선가 맑은 소리를 굴리고, 허기진 아이들은 아지랑이에 취하기라도 한 듯 따스한 햇발 속에서 시름시름 잠에 빠져들어갔다.(조정래, 태백산맥5, pp.89-90)

 

`길쌈할 줄 아느냐'를 '남자 몸을 실을 수 있는 엉덩이를 갖고 있느냐'로 야하게 바꾸어 보았다.
소설<태백산맥5>에서 며느릿감이 될 처녀에게 `길쌈할 줄 아느냐'라고 묻는 이유를 작가는 종합건강진단이라고 재치있게 돌려 표현했다. 꽤 설득력 있는 이야기이다. 이러한 작가의 재치를 응용해 볼만한 대목도 있다. 베틀도구를 돌릴 때는 전신노동이 있어야만 정상적으로 돌아간다고 설명하고 있는데, 그렇다면 베틀도구는 요즘의 헬스기구 몫을 했었다고 생각하고 싶다.

 

고향집 대청마루에 있던 베틀 앞에 앉아 계시던 어머니와 할머니를 본 적은 있었지만, 동작하는 순서는 기억이 희미했었다. 마침 베틀도구가 돌아가는 과정을 자세하게 설명하여 괜찮은 지식을 얻은 듯 하다.


-아래-

며느리감 될 처녀를 놓고 '김쌈할 줄 아느냐'를 확인하는 것이 남도 지방의 풍습처럼 되어버린 것은 단순히 부업을 시켜먹자는 의도만이 아니었던 것이다. 「여자는 엉치가 실해야 하고, 남자의 기운은 어깨에서 나온다」는 말이 있었다. 그것은 곧 '여자의 힘은 엉치에서 나오고, 남자의 기운은 어깨에서 나온다'는 말고 맞통하는 것이었다. 여자에게 있어서 엉덩이가 실해야 한다는 데는 여러 가지 의미가 복합적으로 담겨 있었다. 엉덩이가 실하지 않고서는 먼저, 남자를 제대로 실을 수 없는데다 애기집이 실할 리 없고, 애기집이 실할 리 없으니 애기가 실할 수 없고, 실하지 않은 애기를 실하지 않은 엉덩이가 무사하게 받쳐낼 리 없었던 것이다. 그뿐만 아니라 여자가 엉덩이가 실하지 않고서는 베틀에 올라앉을 수가 없었다.

 

베틀에 앉으면 날이 감은 도투마리와 수평을 이루어 힘을 받는 부티를 먼저 허리가 아닌 엉덩이에 둘러야 했다. 그래야만 서로 엇갈린 날들이 팽팽해지며 제자리를 잡게 되고, 베짜기가 시작되는 것이다. 베짜기란 베틀신을 꿴 다리를 뻗쳤다 당겼다 하는 동작에 따라 오른손에 든 북을 날 사이로 민첩하게 밀어던지고, 바디로 날과 씨를 쳤던 왼손은 재빨리 북을 되받아 오른쪽으로 보내야 하고, 그 사이에 오른손은 바디를 치고 다시 돌아온 북을 받아야 하는, 발다리가 동시에 움직이는 연속동작인 동시에 끝없이 반복동작이었고, 전신노동이었다. 런데 그 전신노동의 중심을 이루는 힘을 부티를 두른 엉덩이가 지탱하고 있었다. 그래서 엉덩이가 부실한 여자는 베틀에 앉을 수 없었고, 베틀잡이 십 년에 엉치 내려앉는다는 말이 생겨나게 되었다. 그러므로 며느리감이 될 처녀에게 '길삼할 줄 아느냐'고 묻는 것은 부업능력만을 따지는 것이 아니라 종합건강진단인 셈이다.(조정래, 태백산맥5, pp.93-94).

 

조회 수 :
1752
등록일 :
2009.08.07
17:37:25
엮인글 :
http://grart2.cafe24.com/xe/bookstory/412/039/trackback
게시글 주소 :
http://grart2.cafe24.com/xe/412
옵션 :
:
:
:
:
List of Articles
번호 제목 글쓴이 조회 수 추천 수 날짜
» 베틀은 아낙들의 헬스기구 이재수 1752   2009-08-07
지난자료들 중에 오래 전(언제인지 기억이 나지 않음)에 조정래 소설 '태백산맥' 관련하여 쓴 글이 있어 이곳에 올립니다./이재수. 우리 입맛은 왜 이리도 간사한 것일까? 식당에서 딱딱하게 얼린 삼겹살을 구워먹는 일이 최고의 외식인 줄만 알고 지냈던...  
6 고흐가 동생에게 보낸 마지막 편지 이재수 1817   2009-08-07
1890년 7월 24일 빈센트 반고흐가 동생 테오에게 보낸 마지막 편지 내용 ------------- 테오에게, 편지와 동봉한 50프랑 수표 고맙게 받았다. 하고 싶은 말이 많았는데 그럴 마음이 사라져버렸다. 그렇게 해봐야 아무런 소용이 없다는 생각이 든...  
5 휴게소에서 만난 폐간호 이재수 1747   2009-08-07
글을 쓴 시기 2001. "통행권을 뽑아가세요" 고속도로에 들어서려고 통행권을 뽑을 때마다 혼자 빙긋 웃는다. 자동차가 통행권 발급 기계 앞에 서면 통행권이 자동으로 쑥 나온다. 개구장이가 장난스럽게 혀를 날름 내미는 것처럼 우스꽝스럽다. "내 혀를 뽑...  
4 철 따라 내용이 달라지는 책 이재수 1865   2009-08-07
월간지나 계간지 같은 정기간행물은 독자들이 철의 변화를 확연하게 느낄 수 있는 듯하다. 이른 봄이면 파릇한 빛깔로, 여름이면 시원한 쪽빛으로, 가을이면 붉은빛으로, 겨울이면 은빛 찬란한 눈빛으로…. 표지 디자인이나 본문 꾸밈들이 계절을 상징하는 빛깔...  
3 소금의 문화사 file 이재수 1891   2009-08-07
[책이야기] 비스듬하게 깎아지른 초원 위에 불어오는 바람을 반기며 돌아가는 풍차 있다. 국가를 상징하는 어느 조형물보다 더 값진 재산이다. 네덜란드 화가들 캔버스에도 풍차가 있는 풍경을 더러 볼 수 있다. 그들에게 풍차는 기름진 마음을 선물한 소중한 ...  
2 [책] 그림 이야기 어연번듯 1757   2009-08-05
그림은 작가 정서가 투명하게 내 비치는 쇼 윈도우에 비교된다. 그림에서 볼 수 있는 소재들이나 기법들은 작가 생애를 엿볼 수 있는 기회가 되기도 한다. 예술이 위대한 이유가 새로움을 창조하는 힘에도 있지만, 작품 속에 사회 정서나 작가 정서를 기록하는...  
1 붓 두 자루에 돈을 싣고 가다 어연번듯 1703   2009-08-05
붓 두 자루에 돈을 싣고 가다붓 두 자루에 돈을 싣고 가다붓 두 자루에 돈을 싣고 가다붓 두 자루에 돈을 싣고 가다붓 두 자루에 돈을 싣고 가다붓 두 자루에 돈을 싣고 가다붓 두 자루에 돈을 싣고 가다붓 두 자루에 돈을 싣고 가다붓 두 자루에 돈을 싣고 가...  
미술인 이재수 홈페이지 http://merz.pe.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