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술과 소통 - 시각문화 - 잡동사니
얼마 전에 놀부 부부를 만났다. 오래 전부터 알고 있는 사람들이지만 그들이 놀부 심보를 내게 써 먹은 것은 지난 늦가을부터였다. 식당을 운영하는 이 부부는 이미 동네에서 욕심쟁이로 소문이 나 있던 차였다.
한번은 놀부 부부 식당의 아랫집 식당 연탄난로 연통이 건물 밖으로 빠져 나와 있었는데, 놀부 부부는 이것도 용납하지 않았다. 자신의 주차장 쪽으로 연통이 한 뼘 정도 나왔으니까 집어 넣으라고 할 정도로 내 것은 철저하게 구분한다. 놀부 부부에게는 허공도 사유재산의 경계선이 있는 셈이다.
작업장 주변에 주인 없는 땅이 있다. 이곳에 놀부 부부가 지난 가을부터 한쪽 구석에 채소를 심더니 점점 확장하여 이젠 모두 놀부 부부의 땅이 되었다. 동네의 주인 없는 조그만 땅덩어리는 모두 이 놀부 부부 차지다. 왜 남의 집 앞에 채소를 심었냐고 따지면 “이게 당신 땅이오?”라고 반문한다. “그럼 이게 당신 땅이오?”라고 똑같이 대들어 봤자 얼굴이 두꺼워 놀부 심보에 위축을 주기란 어려울 정도로 동네 사람들이 두 손 다 들었다.
놀부 부부는 내 작업장 주변까지 땅을 파헤치고 각종 채소들을 심었다. 상추모종 하나만 꽂으면 자기 것이 된다는 좋지 않은 정서를 갖고 있다. 놀부 부부가 올 봄에는 작업도구들을 보관하고 있는 컨테이너 입구에 호박구덩이까지 팠다. 차량이 들락거리는 출입구라고 내가 메워버렸지만, 놀부 부부는 텃밭을 사수하기 위해 매일 주변을 배회한다.
놀부 부부의 텃밭은 지난해까지 모두 내 것이었다. 그 이전에는 동네 할머니가 각종 채소들을 심었던 자리인데 할머니가 몸이 아파 농사를 못짓는다고 하여 내가 조금씩 채소를 키웠다. 지난해부터 이 놀부부부가 땅을 탐내더니 작업실 주변은 물론 이젠 내가 임대한 땅도 자기가 쓰려고 탐을 낸다.
지금까지의 다양한 놀부 심보 사례를 들이대며 한바탕 망신을 주고 싶지만 그럴 가치가 없다. 그까짓 텃밭 몇 평에서 채소가 얼마나 나온다고 ... 놀부 부부에게는 동네 여기저기 심어 놓은 채소량이 상당하기는 하다. 자신의 식당 손님들에게 직접 농사를 지어서 음식을 만든다고 홍보할 정도다.
흥미로운 점은 내가 이 놀부 부부의 행동과 생각들을 늘 관찰하면서 기록하고 있다는 점이다. 살면서 이렇게 고약한 놀부 심보는 처음 경험하여 그들의 심리를 분석하는 묘한 흥밋거리에 푹 빠졌다. 놀부 부부의 정서를 파악하기 위해 예전에 했던 대화내용이나 주변 사람들과 나눈 이야기들까지 조합하여 퍼즐을 맞추고 있다.
놀부 부부에게 텃밭을 빼앗기고도 아무런 항의를 하지 않고 있는 이유가 있다. 놀부 부부는 내가 침묵 타는 일이 더 불안하다. 멀리서 내 모습을 보면 흠짓거리면서 지켜보고 있다는 것을 느낄 수 있었고, 내가 동네 사람들과 무슨 대화를 주고 받으면 자신들을 욕하는 줄 알고 있다.
나는 사람의 감정을 움직일 수 있는 그림을 그리거나 줄글을 터서 밥과 술을 벌어왔다. 늘 인간의 특별한 감정이입에 관한 연구를 하는 일이 직업이다. 고전소설에나 등장하는 놀부 부부의 심리를 직접 파악하고 분석할 수 있는 좋은 기회를 얻었다. 인간에게 존재하는 특별한 심리를 이용하여 창작활동에 연결시키면 밥과 술을 벌 수 있다.
장마철이 되면 주변 정리한다는 핑계로 굴삭기를 동원하여 싹 밀어내고, 그동안 놀부 심보에 당한 동네 사람들의 속을 시원하게 해 줄 생각을 가지고 있고, 이후의 반응도 분석하여 인간의 욕망을 확인하고 창작활동에 응용할 계획이다. 놀부 부부가 내게 심보를 부린 것은 큰 행운이다./숲