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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 현악기 시장은 독일과 일본이 장악하고 있다. 고급 수제품은 독일이, 교육용이란 저가 제품은 일본이 세계시장을 석권하고 있다. 국내기업이 교육용 현악기시장에서 일본 제품에 맞먹는 품질과 가격경쟁력을 갖추고 있었다.
이토벤의 회사도 1년 전까지만 해도 안정적인 시장 점유율을 보여 왔고, 이를 바탕으로 해외시장에서도 자체 브랜드를 런칭할 정도로 기술력을 인정받는 현악기 전문 제조기업이었다. 그러나 중국의 악기 제조기술과 유통파워가 예상보다 빠른 속도로 성장하면서 상황은 급반전되기 시작했다.
-소설 ‘경청’(조신영 박현찬 공저, '경청', 위즈덤하우스, 2007.5.2) 중에서-
“남의 말을 잘 들어야 한다”
“남의 말을 듣지 않으면 이렇게 힘들다”
‘경청’ 소설 같은 소설 아쉬움 남아
글/ 이재수
미국의 CEO들이 유행처럼 ‘경청훈련’을 받는다고 한다. 국내 서점가에도 대화의 소통과 관련한 다양한 분야의 책들이 즐비하다. ‘경청훈련’은 남의 말을 듣고 분석하고 판단하여 업무에 적용시키기 위한 훈련인 셈이다.
대부분의 지도자들이 상대방의 말은 듣지 않고 자신을 자랑하는데 익숙하다. 특히 정치인들이나 공직자들은 지지를 얻기 위해 자신의 능력을 과대 포장한 적이 많고, 또는 서비스를 제공하기 위해 허리를 숙였던 경험이 있어 그에 대한 보상심리가 크게 작용한다는 심리분석학적 요인이 있다.
최근 주변에서 벌어지는 현상들과 비슷하게 맞물려 돌아가는 소설 한 권을 얻었다. 분야를 가리지 않는 잡식성 독서습관에서 좀 더 체계적인 독서습관으로 정리하겠다는 생각을 가지고 있었지만, 소설은 관심 밖이었다.
당분간 전공 분야 이외의 책은 들추지 않겠다고 독서계획을 세워놓았는데, 며칠 전 친분이 있는 군인아저씨’가 사무실에 던져 놓고 간 소설책이 나름대로 준비했던 독서계획을 깡그리 망가뜨렸다.
소설은 악기 제조회사에 관리직으로 근무하는 주인공(이청 과장, 별칭: 이토벤)이 회사가 중국시장 경쟁력에 밀려 구조조정을 계획하면서 진행되는 이야기로 시작된다. 이토벤은 회사의 구조조정 방침에 동료들의 비난에도 불구하고 구조조정을 돕고, 그 대가로 회사 악기 대리점 개업을 하게 된다.
이토벤은 회사의 구조조종을 돕는 대가로 악기 대리점을 개업했으나...
그러나 악기 대리점 개업일에 화장실에서 쓰러진 이토벤은 악성뇌종양이라는 병을 얻게 되고, 악성뇌종양으로 인해 청각을 서서히 잃게 된다.
이토벤에게는 발달장애인 아들(현)이 있었다. 결국 아들을 위해 마지막으로 바이올린을 만들기로 결심하고 옛 직장동료의 도움으로 바이올린 제조회사에 들어가 바이올린 제조기술을 숙련을 한다.
이토벤은 회사의 개성이 강한 팀에서 일을 하면서 귀가 잘 들리지 않아 팀원들의 말을 더 집중하여 상대방과 소통한다. 이러한 경청으로 어려움에 처해 있는 회사를 살려내는 결정적인 역할을 한다. 이토벤은 팀원들의 도움으로 아들이 연주할 바이올린도 완성하고, 아들의 바이올린 연주를 마지막으로 듣고 세상을 떠난다.
십년 후 아버지가 다니던 회사의 도움으로 미국유학을 떠났던 현이의 귀국연주회가 회사의 초청으로 이뤄진다. 현이의 귀국 연주회 제목은 ‘경청 음악회’. 연주곡은 베토벤이 청각 장애상태에서 작곡한 바이올린 소나타 5번.
현이의 연주회는 베토벤 특유의 열정적 멜로디가 절정을 달하던 마지막 4장에서 바이올린 E선이 끊어지는 사고가 발생했으나, 현이는 끊어진 줄을 갈아 끼우지 않고 3줄만으로 베토벤 바이올린 소나타 5번을 새롭게 편곡하여 연주한다.
소설은 청각을 잃고 침묵 속에서 만들어낸 베토벤의 음악, 청각장애를 앓던 이토벤이 만든 바이올린, 발달장애를 앓았던 아들, 아들이 연주하는 소리를 하늘에서 귀 기울이고 있는 이토벤을 하나로 묶어 ‘경청’의 결과를 장식했다.
책을 덮고 ‘책이야기’를 어디에 초점을 맞출 것인가 고민했다. 경청이 주된 소재이기는 하나, 결과는 주인공, 베토벤, 현이가 장애를 극복한 과정이 강렬하여 ‘경청의 메시지’가 상대적으로 눌리고 있어 아쉽다.
이 책에서는 “남의 말을 잘 들어야 한다, 남의 말을 듣지 않으면 이렇게 힘들다”라는 주장보다 “발달장애를 겪었던 연주자가 바이올린 줄이 끊어졌어도 멋지게 연주를 했다”라는 ‘천재 음악가를 기대하는 소설 같은 소설일 뿐’이라는 느낌을 건졌다./2007년 여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