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철 따라 내용이 달라지는 책
이재수월간지나 계간지 같은 정기간행물은 독자들이 철의 변화를 확연하게 느낄 수 있는 듯하다. 이른 봄이면 파릇한 빛깔로, 여름이면 시원한 쪽빛으로, 가을이면 붉은빛으로, 겨울이면 은빛 찬란한 눈빛으로…. 표지 디자인이나 본문 꾸밈들이 계절을 상징하는 빛깔들로 수놓아 진다. 디자인에 사용된 참고 그림이나 참고 사진뿐만이 아니다. 투고된 글들도 계절을 벗어난 행보가 그리 많지 않다. 계절빛이 뚜렷한 책문화도 독특한 문화현상이 아닌가 보여진다.
살면서 환경변화에서 가장 민감한 부분이 철의 변화다. 사계절이 뚜렷한 우리 나라에서 철의 변화는 기대와 꿈을 싣고 있는 삶에서부터 아쉬움과 슬픈 여운을 남기는 삶까지 모두 엮어진다. 변화하는 철에 맞춰 집단장도 해야하고, 입어야 할 옷도 준비해야 한다. 철을 상징하며 열리는 고유명절이나 기념일도 많다. 추석은 추수의 계절이 아니라면 있을 수 없는 명절이고, 단오절은 파릇한 풀잎이 돋아나는 철이 아니라면 존재할 수 없는 명절이다.
계절에 맞는 여행도 있다. 봄나들이는 움츠리고 갇혀 있었던 겨울 한복판을 빠져 나온 기쁨의 삶이다. 여름 더위를 식히러 떠나는 여행은 휴식이 필요한 사람들에게 더 없이 안정된 삶이다. 가을날 단풍놀이는 인간의 궁극적인 목표인 시각만족을 위한 원천적인 삶이다. 두툼한 외투를 걸치고 눈길 위를 걷는 여행은 지난날을 되돌아보는 반성의 삶이다.
이렇듯 변화하는 철을 누리며 살아가는 우리들 마음은 부자일 수밖에 없다. 어느 겨레나 살고 있는 지형조건에 그들 정서가 맞춰져 있다. 가까운 일본을 보자. 지진이 많은 지질이고, 태풍이 자주 거쳐가는 섬이다보니 그들은 늘 긴장하며 살아간다. 우리가 보기에는 아슬아슬하고 위태로워 보이지만 오랜 세월에 걸쳐 배인 정서들이다. 그들에게는 그 정서가 가장 안정된 삶이다. 먼 나라 미국을 보자. 땅덩어리가 크다보니 집도 크고 사람도 크다. 과수원에는 일조량이 많아 과일도 크다. 사람들 통도 조금 큰 편이다. 전쟁을 하면 딱꿍거리는 소총싸움은 하지 않는다. 한방에 건물을 날려버리는 미사일 싸움이다. 어디 그뿐인가. 지역마다 기후 조건이 각기 다르다. 어느 지역은 훅훅 거리는 여름인가 하면, 어느 지역은 눈이 녹지 않는 산이 보이는 곳도 있다. 여러 인종이 믹스된 국민들이라 질서를 존중한다. 그들에게는 억압된 질서만도 있어야 살 수 있는 길이다.
우리 민족은 어떠한가. 우리 민족은 온갖 여유를 다 부리면서 살아왔다. 우리에게 긴장된 삶이나 질서는 필요하지 않다. 철이 되면 철에 맞는 삶이 따로 있고 철에 맞는 정서가 따로 있다. 그리고 애써 질서를 강조하지 않아도 단일민족이라는 공동체적 민족의식이 있다. 강조해야만 하는 억압된 질서나 긴장 없는 여유로운 삶에서 부자된 마음을 가질 수 있는 겨레가 아닌가 싶다.
정기간행물들을 정리하면서 자연환경의 변화가 겨레의 정서와 연관이 있음을 새삼 느낄 수 있었다. 철에 따라 달라지는 책내용도 우리에게는 소중한 문화재산이다./숲